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2024)

의례적인 새해 덕담 나누기도 힘겨운 세상이다. 나라 꼴을 한없이 추락시키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세밑에는 굴욕적 협상을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돌덩어리 하나를 더 얹었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이라도 싹터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그 작은 불빛이 골고루 퍼져나가 온 세상을 따스하게 비춰주는 내일을 꿈꾼다. 바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행복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태는 다양하지만 모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기업이나 사회단체, 국가도 그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때만이 존재 의미가 있다. 그리고 행복은 홀로 이뤄지지 않는다. 불행한 이웃을 두고 행복하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함께, 더불어 행복할 때만이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행복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출산율 등 각종 국제기구의 통계 수치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지난해 유행했던 ‘헬조선’(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말이 우리 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사회는 발전 동력을 상실한 채 머잖아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우리는 행복을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로 상정하고, 모든 정책과 제도의 틀을 행복지수를 높이는 쪽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몇 위고,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의 껍데기 수치에만 매달려서는 희망이 없다. 물질적 행복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이나 국가적 자긍심, 사회적 연대 등 정신적 행복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정책은 국민행복보다 경제성장 자체에 집중됐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 편중이 강화되는 등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화됐으며, 공정한 시장질서 등 경제정의는 실종됐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다수의 국민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제성장이 국민행복을 보장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더욱이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기껏해야 3% 안팎의 성장률에 머물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공정한 분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강화,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다수 국민의 경제 소득을 일정 정도 보장해주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물질적 행복을 충족시킬 최소한의 기본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

경제적 소득이 충족됐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가족, 이웃, 지역사회, 국가 등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국가가 이를 조장해온 측면도 있다. 경쟁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과도한 시장경제 원리를 사회 전반에 적용함으로써 자기 이외의 상대방을 모두 경쟁 상대로 인식하게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이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이 약육강식의 경쟁 관계에 있으면 개인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이나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상대방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하도록 공동체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범사회적 노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치제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도 구성원들의 행복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를 30~40년 전으로 퇴행시키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현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미 용도 폐기된 ‘국민행복시대’ 같은 입에 발린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수 권력집단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라는 법률적 조직체의 이해가 아니라 다수 구성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쪽으로 외교가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 국민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되고, 국민의 행복이 증진된다. 지난 연말 이뤄진 한-일 간의 위안부 협상에서 보듯 국가와 국민이 괴리되면 국가는 국민행복을 증진하기는커녕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는 존재로 전락한다.

세계 각국은 지금 모든 대내외 정책의 초점을 국민행복지수 높이기에 맞추고 경쟁적으로 행복 정책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13년 유엔이 ‘세계행복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나라마다 다양한 지표를 만들어 국민의 행복 수준을 측정하고, 이에 맞춰 정책 전반을 조정해 나간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도 지난해 3월부터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한국 사회에서의 존재 의의와 역할을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언론’으로 재정립했다. 앞으로 다양한 기획 기사와 포럼, 행사 등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도 더불어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 ‘포용적 성장’ 미 벌링턴 가다


제인 노델 벌링턴시의회 의장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

제인 노델 버몬트주립대 경제학 교수 겸 벌링턴시 의회 의장. 사진 이용인 특파원

제인 노델(61) 버몬트주립대 경제학 교수 겸 벌링턴시 의회 의장과의 인터뷰는 12월14~16일 ‘동행 취재’를 통해 진행됐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벌링턴 경제 상황은 어떠했나?

“물론 금융위기의 여파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타격을 적게 입었다. 호황과 불황을 오르내리는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하강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좀 더 안정적이었다.”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는 중산층과 노동계층이 강하다. 벌링턴의 정책들은 이들의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경제적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첫째, 주택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주택 정책을 시장의 밖으로, 공급자들 중심의 논리 밖으로 끌어내는 것 말이다. 둘째, 지역에 기반한 사업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회복력 강한 경제를 위해선 두 가지 요소가 아주 중요하다.”

-‘벌링턴 모델’이 포용적 성장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지금 우리 경제시스템은 모든 사람이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뒤엎을 필요는 없다. 혁신은 자본주의의 미덕이다. 하지만 좀 더 광범위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변화시킬 필요는 있다. 경제적 혜택이 소수에게만 갇혀 있는 식의 시스템은 향후 수십년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

벌링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2)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집 원아들이 지난해 2월13일 설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노인복지센터를 찾아 동요와 율동을 선보이며 어르신들께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싱크탱크 광장

‘행복을 정책적으로 정조준해야 할 때다.’ 2012년 유엔(UN·국제연합)의 제1차 ‘세계행복보고서’ 발간은 각국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공공정책이 시민들의 행복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2013년 제2차 보고서, 2015년 제3차 보고서가 발간됐다. 이 보고서의 출현으로 세계와 국가, 도시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해야’ 하며, 사람을 위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공공정책이 어떤 개입을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 성찰적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경제 중심 패러다임의 한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자각과 반성이 급속히 제출되기 시작한 셈이다. 또다른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도 2011년부터 ‘더 나은 삶을 향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해 34개 회원국의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있다. 부탄은 이미 1970년대에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을 기준으로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이른바 ‘행복정치’를 표방했다.

■ 세계는 지금 ‘행복’ 정책 개입 중



세계 각국은 이미 시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한 정책적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치 인플레이션타기팅(물가안정목표제)처럼 ‘행복 타기팅’ 정책을 제대로 펴려면 우선 시민들의 주관적 행복 수준을 다각도로 정교하게 측정해야 한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는 세계 15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갤럽 ‘삶의 평가’ 자료를 기반으로 1인당 지디피, 사회적 지지, 기대수명, 자기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 부패로부터의 자유, 관용 등 6가지 변수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2012년 조사 결과를 보면, 세계적으로 지난 30년간 행복도는 평균 0.14배 증가했다. 가장 행복한 4개국(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네덜란드)은 평균 7.6점, 행복도가 가장 낮은 4개국(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은 평균 3.4점이었다. 특히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소득 이외에 ‘사회적 신뢰’ 같은 다른 변수들이 행복에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013년 세계행복도 조사(6.2점)에서 41위였다. 오이시디가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더 나은 삶 지수’(2014)에 따르면 한국은 25위다. 11개 평가영역에서 시민참여(3위)·교육(4위)·안전(6위)은 상위권인 반면, 환경(30위)·건강(30위)·공동체(34위)·일과 삶의 균형(34위)은 하위권이다.

영국은 2010년, 성장을 포괄적으로 측정하기에는 불완전한 지디피 경제지표를 대체할 웰빙지표(GWB)를 중요한 사회발전 지표로 제시했다. 행복지수를 통해 삶에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재평가해 장기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기로 한 셈이다. 2011년엔 영국 통계청이 실시한 전국 가구 조사에서 행복 관련 질문(4개)이 최초로 수록됐다.

2012년 초에는 통계청 주관으로 수십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대중협의회’를 열어 ‘국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측정 범위·지표들을 구축했다. 2012년 이후 매년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영국의 ‘국민 웰빙 지표’는 개인 행복감·관계·건강·일·주거지·경제 등 총 10개 영역에 걸쳐 42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3)

서울시민의 체감 행복지수(10년 전, 현재, 10년 후) 평가

캐나다의 행복지수인 ‘삶의 질 지표’(CIW)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장기간 논의를 거쳐 2011년에 확정됐다. 온타리오주 워털루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가단위 연구로, 총 8개 영역(건강, 생활수준, 커뮤니티 활력, 교육, 환경 등)에 걸쳐 64개 지표로 구성된다. 이 행복지수 데이터는 주로 캐나다 통계청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 뉴질랜드의 ‘삶의 질 서베이’(QLS)는 오클랜드 등 6개 지역위원회와 협력해 2003년부터 2년에 한번씩 조사되고 있다. 2014년 조사는 국제여론조사기관 닐슨이 5200여명을 대상으로 수행했다. 이 서베이는 총 8개 영역(건강과 웰빙, 범죄와 안전, 커뮤니티, 공공교통 등)에 걸쳐 30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네덜란드의 ‘행복지표’(LSI)는 네덜란드 통계청과 국책연구기관인 사회연구소가 이미 1974년부터 개발·조사하고 있다. 2년에 한번씩 삶의 질 지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8개 영역(건강·주거·이동성·휴가·사회참여·스포츠 등)의 19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유엔 2012년 ‘세계행복보고서’ 발간
각국 정책 패러다임 전환 획 그어
OECD도 회원국 삶의 질 종합적 측정



영국·캐나다·네덜란드 등도
건강·환경 등 다양한 영역 조사
국민의 ‘행복지표’ 체계화

한국 행복 측정 연구는 더뎌
개별적 일회성 연구에 그쳐
“정책목표에 행복지표 활용 필요”



■ 행복 영향 요인, 소득·건강 등 다양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거시적 요인으로서 ‘소득’이다. 소득은 경제발달이 낮은 단계에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 변수이지만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고 나면 제한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수많은 국제 행복연구에서의 일치된 결론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현실 만족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소득이 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욕구의 기대치 역시 상승하게 되면 소득의 절대적 증가로부터 얻는 주관적 행복감은 이전과 비교할 때 불변이거나 심지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여러 연구들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행복 불평등’ 역시 커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나이와 성별도 한가지 변수다. 나이와 행복감의 관계는, 40대 중반까지 행복지수가 낮아지다가 그 이후부터 증가한다는 주장(U자형)과 51살까지 행복지수가 높아지다가 이후부터는 감소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 일반적으로 U자형 주장이 다수다. 다만 성별에 따른 행복도의 차이는 일반화하기 어렵다. 성별은, 그 자체가 행복을 결정짓는 직접 요인이라기보다는 다른 인구사회학적 및 환경적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영향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교육과 건강을 보면,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큰 행복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는 교육 그 자체의 영향보다는 교육이 가져온 안정된 경제적 지위 때문일 수 있다. 여러 행복연구들에 따르면, 건강과 행복은 일관되게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건강이 행복 수준을 직접적으로 결정짓기도 하지만, 소득 수준과 교육 등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때조차 건강을 매개로 구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회적 신뢰와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여러 실증연구에 따르면, 가족·이웃·지역공동체와의 연대가 강할수록 또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응답자들의 행복지수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삶의 만족도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건 ‘신뢰’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은 “행복을 증진하려면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정책이 집중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요인도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민주정치체제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국가 간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를 통제(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일수록 행복에 대한 민주주의의 영향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 한국, 정책개입 아직 초보단계



한국 사회의 행복 측정 연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디고 늦은 편이다. 아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개별적인 일회성 연구에 그치고 있다. 주관적 지표의 경우 측정 내용이 제각각이고 설문 항목이나 질문 방식도 서로 다른 기준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행복지표의 정책적 활용은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지표도 개발해야 한다. 고승희 충남연구원 행정복지연구부장은 “행복 측정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건 사용된 개별 지표들이 적절히 선택되었는지, 부여된 가중치가 적절한지 등의 문제다. 행복지수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우선순위 선정과 평가에 기여하려면 시계열적인 변화 양상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측정된 행복지표 조사 결과를 정책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삶의 어떤 측면이 행복에 중요성을 갖는지, 행복도를 높이려면 어떤 사회문제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식별’이 이뤄져야 한다. 고승희 부장은 “정책 목표와 우선순위 설정, 이를 위한 예산 책정 등 자원 투입, 행복 관련 정책의 성과 평가 등 여러 과정에서 행복지표를 활용하도록 제도적 절차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행복지표는 지속적이고 방대한 자료 축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중앙과 지역의 각 기관에서 운영중인 행복 관련 지표를 체계적으로 통합분석할 전문조직도 필요하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모두가 만족하는 ‘도시의 재탄생’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4)

존 타시로 시티마켓 총매니저가 12월14일(현지시각) 농산물·과일 코너에서 버몬트 지역에서 재배한 비싼 유기농 토마토와 다른 지역의 다소 싼 토마토 가격을 비교하면서 저소득층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상품을 가격별로 균형있게 배합해 놓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 ‘포용적 성장’ 미 벌링턴 가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5)

2010년 경제·금융 전문지 <키플링어>는 캐나다와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미국 북부의 버몬트주 벌링턴을 워싱턴, 뉴욕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대 도시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연금협회는 2007년 은퇴자들이 주목할 만한 4개 도시 중의 하나로 벌링턴을 선정했다.

벌링턴은 버몬트주에선 가장 큰 도시지만 미국 전체적으로 보면 인구 4만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일 뿐이다. 그럼에도 벌링턴은 성공적인 ‘도시 개발 모델’로 미국 안에서 별난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름엔 캠핑, 가을엔 단풍, 겨울엔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자연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수십년 동안 중산층과 노동자 보호, 재생에너지 사용 등 지속가능한 경제를 도모하는 ‘포용적 성장’이 단단한 결과물로 쌓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모습이 미국인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셈이다.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벌링턴 번화가의 슈퍼마켓인 시티마켓은 ‘벌링턴 모델’의 상징 같은 곳이다. 12월14일(현지시각) 방문한 시티마켓은 평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손님들로 붐볐다. 직원들의 표정이나 대화에서 유쾌함이 묻어난다.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들의 얼굴에도 짜증내는 기색이 없다. 시티마켓의 연매출은 4300만달러(약 503억원)로, 미국내 3천개의 협동조합 중에서도 단일 매장 기준으로 가장 높다. 직원 수만 해도 230명에 이른다. 조합원은 1만명에 이르고, 상품 공급자도 270곳에 달한다. 외형상으로도 웬만한 대형 슈퍼마켓이 부럽지 않다.

시티마켓의 출발은 미미했다. 1970년대 초 생활운동의 하나로 진보적 인사들 몇십명이 벌링턴 교외에 사무실을 두고 유기농과 지역농산물을 집단구매해 나눠 소비하는 형태였다. 2002년 시티마켓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인 쇼스(Shaw’s)가 현재 시티마켓 자리에 입점하려 하자, 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이 들어서봤자, 이익의 상당 부분이 외부로 빠져나가 벌링턴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빠져나가 벌링턴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발 못붙이게 막아
생협 마켓이 지역경제 ‘산소통’
직원만 230명…연매출 503억원

임대주택 비율 의무화
샌더스 의원 1980년대 시장 시절
호수 근처 호화빌딩 재개발 제동
공공 영구임대주택으로 바꿔

‘100% 재생에너지’ 신화
풍력·태양열 등 100% 전기 생산
2009년부터 요금 한번도 안올려

시의회는 시티마켓에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다만, 조건을 달았다. 비싼 유기농과 지역농산물만 팔지 말고, 저소득층을 위해 값싼 상품도 함께 팔라는 거였다. 회원제를 유지하되, 일반인도 물건을 살 수 있게끔 문호를 개방하도록 했다.

유기농이라는 조직 원칙과 ‘계급적 배려’라는 의회의 요구 사이에서 조합 내부에서 격렬한 ‘노선 투쟁’이 일었다. 하지만 조합은 시의회의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 존 타시로 총매니저는 “지금은 70%는 유기농·지역농산물을 팔고, 나머지 30%는 싼 농산물을 팔고 있다”며 “높은 가격, 중간 가격, 낮은 가격 등을 적절히 배합해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총매니저의 안내로 토마토 판매 코너를 가보니, 조금 싼 가격의 멕시코산 유기농 토마토와 다소 비싼 가격의 버몬트주산 토마토 등을 함께 팔고 있었다.

시티마켓은 미국 안에서도 보기 드물게 직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급여와 복지를 보장하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이 아니라 실질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활임금제’를 채택하고 있고, 실적에 따라 보너스가 추가된다. 1년에 4주간의 유급 휴가가 주어진다. 모든 직원들에게 무료 버스 이용권을 주고, 근무 중 커피와 차는 무제한 거저 제공되며, 할인가로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 생산자들한테는 이자를 받지 않고 자금을 빌려주는 ‘제로 퍼센트 론’ 정책을 펴고 있다. 생산자들이 성장해야 시티마켓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형 슈퍼마켓을 거부한 벌링턴의 자부심은 시내 가장 번화가인 처치 스트리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메이시스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작지만 특색있는 음식점들, 보석 수공예점, 옷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월마트, 타깃 등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할인점은 없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980년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소규모 개인 사업자들에게 시 정부 자금을 대주며 육성한 덕분이라고 한다.

벌링턴 모델의 또 다른 축은 ‘혼합형 용도지역제’(inclusionary zoning)로 불리는 일종의 임대주택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일반 사업자가 주택개발을 할 경우에 10~25% 정도의 비율을 의무적으로 저소득층한테 임대하도록 한 것이다. 임대료는 세입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사실상 시 정부에서 결정한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7)

미국 벌링턴 시민들이 12월13일(현지시각) 저녁 섐플레인 호숫가의 ‘워터프런트 파크’를 산책하고 있다. 이 부지를 소유하고 있던 한 벌링턴 갑부가 1980년대 초호화 호텔 등을 지으려 했으나 당시 시장이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를 무산시키고 시민들의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임대주택의 뿌리는 샌더스 상원의원이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노스게이트 아파트 투쟁’으로 불리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섐플레인 호수 근처의 노른자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부지 소유자들이 기존 세입자들을 내쫓고 재개발을 하려 하자, ‘샌더스 시장’은 세입자들을 조직해 맞서 싸웠다. 노스게이트 아파트 운영이사회의 이사를 맡고 있는 테드 윔피(63)는 “땅 주인들은 기존 임대아파트를 밀어내고 큰 빌딩과 호화 콘도를 짓고 싶어했지만 샌더스는 노동자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주정부와 연방정부, 은행 등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아 공공 영구임대주택으로 바꿨다”고 소개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은 벌링턴의 또 다른 얼굴이다. 벌링턴전력회사는 올해 초 나무칩·풍력·수력·태양열 등의 재생에너지로만 100% 전기를 생산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2009년부터 전기료를 한번도 올리지 않아 가계 부담도 줄여주고 있다. 닐 런더빌 총지배인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평균적으로 좀 더 저렴하고 안정적인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벌링턴이 어떻게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발전 모델을 꾸려올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자유분방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부터, 1960년대 뉴욕 등에서 인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벌링턴으로 이주해 지역운동을 한 덕분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81년 시장으로 당선된 샌더스가 네 차례 연임을 하면서 토대를 다지고, ‘샌더스 후계자들’이 계승 발전시킨 정책적 성과들을 유권자들이 인정해줬다는 것이다. 지난 34년간 단 한차례만 공화당 시장이 집권했을 뿐이다.

제인 노델(61) 버몬트주립대 경제학 교수 겸 시의회 의장의 말대로 “평등의 문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의 영역”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벌링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중소기업과 머리 맞대니 ‘더불어 성장’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8)

장주옥 한국동서발전 사장(오른쪽)이 2015년 10월13일 협력업체인 한국본산㈜을 방문해 밸브의 성능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은 134개 협력사들과 ‘중소기업협의회’를 만들어 상생·협력의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동서발전 제공

한국동서발전 윈-윈 발전모델 관심
134개 업체와 중소기업협의회 꾸려
연구비 등 지원…매출·수익·고용 증가

“134개의 협력 중소기업들이 잘돼야 우리 회사도 설비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안정적인 발전설비 운영이 가능해져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장주옥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협력업체들과 함께 ‘중소기업협의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동서발전은 2001년 한국전력에서 자회사로 분리된 발전회사이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사업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장비 집약 사업이다. 설비 시스템이 복잡하고 핵심 부품의 종류가 다양해, 이를 생산·납품하는 협력 중소기업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장 사장은 “협력사들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정보 공유를 활성화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2013년부터 ‘동반성장 2.0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동서발전은 2004년부터 운영하던 중소기업지원팀을 2011년 동반성장센터로 확대하는 등 협력사들과의 상생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동반성장 2.0 모델도 동서발전 중소기업협의회 소속 134개 회원사와 정책 공유를 위한 정기 워크숍과 전직원 대상 간담회 개최 등을 통해 나온 소통의 성과물이다.

특히 2012년 11월 장 사장 취임 이후 협력사들과의 소통이 더욱 강화됐다. 장 사장은 2014년 한해 동안 협력업체 30곳, 올해 12곳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장 사장은 협력업체들의 의견을 핵심 기술 개발, 해외 판로 개척 및 동반 진출, 공생 발전 구현,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등 4대 분야로 나눠 ‘동반성장 2.0 모델’에 담았고, 34건을 과제로 채택해 개선해나가고 있다. 이 회사 동반성장센터 박재홍 차장은 “과거에는 본사가 일방적으로 동반성장을 주도하는 식이었다면, 요즘은 협력사들과 수시로 협의하고 애로해소센터도 운영하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한국동서발전이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2011년부터 협력사들에 제공하고 있는 ‘테스트 베드’는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새로 개발한 제품을 동서발전에 시범 설치해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협력사들의 매출 확대를 돕고 있다. 협력사들은 5년 동안 70건의 시제품을 시범 설치한 뒤 새로운 판로를 확보했고 562억원의 판매 실적을 냈다.

동서발전은 협력사들을 위해 해외 판로 개척도 지원하고 있다. 2011년부터 95차례에 걸쳐 협력사들의 국내외 전시회 참여를 도와 35억7천만달러어치의 판로 개척에 기여했다고 한다. 2013년에 인도네시아에, 2014년엔 중국에 각각 ‘동반성장 해외사무소’를 열어 협력사들의 현지 시장 개척도 돕고 있다.

또 협력 중소기업들에 모두 109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수행하고 있는 358건의 공동 기술 개발은 동서발전과 협력사들 양쪽 모두의 경쟁력 강화와 수익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2013년 11월부터 1년 동안 협력사 ‘싸이언’에 연구비 4억2천만원을 지원해 개발한 ‘보일러 고장 조기 감지 장치’ 덕분에, 동서발전은 설비 정지로 인한 손실이 줄고 발전 정지 시간 단축으로 전력 거래 수익이 늘어 연간 8억2천만원의 이익이 생겼다. 협력사 싸이언도 특허 등록과 함께 판로가 확대돼 120억원 규모의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

‘동서발전 중소기업협의회’의 송용섭 회장(협력업체 ‘세코’ 사장)은 “중소기업 혼자만으로는 해외 시장을 뚫기가 정말 어렵다. 동서발전이 협력사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전력그룹과 기술 교류를 추진하는 등 든든한 버팀목이 돼 내년엔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협력사들과의 상생 노력에 힘입어 3년 동안 ‘동반성장 2.0 모델’을 적용한 대표 협력업체 61곳의 매출이 17% 늘고 고용이 22%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동서발전은 설명했다.

윤영미 선임기자 youngmi@hani.co.kr

 “슬픔·분노 나눠지고 ‘세월호 잊지 말자’ 노래합니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9)

416합창단이 지난 20일 성남시청에서 지역 시민단체들이 공동주최한 ‘까치의 송년아리랑’ 공연을 마치고 함께 했다. 맨 뒷줄 오른쪽 여섯째가 지휘 겸 기획자 박미리씨, 여덟째가 대표 이남석씨다.

[짬] 송년 특집-나누는 사람들 416합창단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0)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호흡을 맞추고 입을 모아 함께 노래를 하다 보니 ‘이웃’을 넘어 ‘가족’이 된 느낌이에요.”

매주 월요일 저녁 경기 안산의 세월호 분향소에서는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진다. ‘4·16 참사’ 1주기가 넘어가면서 진상 규명은커녕 여론의 관심마저 시들해가던 지난 7월부터였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평화의나무합창단(지휘 김준범)에서 ‘세월호 500일 합동 기획공연’을 제안했고, 단원 20여명이 안산에 달려와 세월호 가족 20여명과 함께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찾고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자는 마음이었죠.”(세월호 가족들) “가족들이 집 밖으로 나올있도록 노래로나마 위로를 해드리고 싶어 기꺼이 달려갔지요.”(평화의 나무 단원들)

그로부터 6개월, 이들은 ‘416합창단’의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노래하고 있다.

세월호 가족-평화의 나무 합창단
뮤직비디오 제작 함께하며 ‘인연’
지난 8월 ‘세월호 500일 합동공연’
‘노래의 감동과 힘’ 공유하며 연대

가족 20여명-단원 10여명 참여
지난달 ‘416합창단’ 공식 결성
“추모곡 직접 불러 문화로 승화”

이들의 첫 만남은 지난해 5월10일 안산에서 열린 첫 세월호 시민추모제에서 이뤄졌다. 모두가 참사의 충격에 빠져 있던 그때, ‘평화의 나무’는 무대에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르며, 가족들은 맨 앞쪽에 모여 앉아 눈물로 인사를 나눴다. 그날 이후 평화의 나무는 세월호 가족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 추모공연’ 이후부터 평화의 나무는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진을 친 가족들의 천막농성장을 주기로 찾아가 간이공연으로 연대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져 2015년 5월에는 세월호 뮤직비디오 ‘네버 엔딩 스토리’에도 함께 출연하고 발표공연도 했다. ‘리멤버0416’ 대표인 오지숙씨가 제안하고 총괄 제작한 이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20여명의 단원고 희생자 학부모들로 ‘세월호 가족 합창단’이 꾸려졌다.

“416합창단 결성의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8월29일 세월호광장에서 ‘여기 사람들 있네’를 주제로 함께했던 ‘500일 추모문화제’ 합동공연이었어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래로 수천명의대중과 소통하는 일체감을 느꼈고 ‘합창의 힘’을 확인했거든요.”

부인 최순화씨와 함께 가족 합창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창현(단원고 2학년 5반)군의 아버지 이남석씨는 “무엇보다 한결같이 함께해준 평화의 나무 단원들에 대한 ‘신뢰’가 큰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합창 활동을 하면서 가족들은 ‘치유의 경험’을 입 모아 고백하고 있다. 참사 뒤 하루도 술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는 ‘예진 엄마’는 “노래를 연습하거나 공연한 날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쉴 수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합창단 이름으로 공식 활동을 하려면 노래도 잘해야 할 것 같다’는 바람에 가족들은 평화의 나무에 연습 도움을 청했다. 이에 호응해 평화의 나무 단원 10여명이 합류해 매주 함께 연습을 해왔다. “집에서 분향소까지 불과 10분 거리인데도 귀찮아 결석하려다가도 저마다 직장과 생업이 있는 분들이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평일 저녁 시간을 내서 안산까지 와주는 열성을 생각하면 힘을 내 나서게 돼요.” 그렇게 가족들은 점차 마음을 열었다.

“처음 안산 분향소에 연습하러 갔을 때는 분위기도 마음도 표정도 너무 무거웠어요. 감히 ‘즐겁게 노래를 하자’고 나설 수가 없어서 그냥 옆에 앉아 조용히 따라 부르곤 했죠. 그런데 합동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부터는 가족들이 훨씬 적극적이에요. 무엇보다 표정이 밝아지고 스스럼없이 서로 수다도 떨 만큼 편안해졌어요.”

‘고교 음악 교사’ 출신으로 합동공연 때부터 연습 지도를 맡아온 평화의 나무 단원 박미리씨는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제안으로 지난달부터는 ‘세월호 가족 합창단’에서 ‘416합창단’으로 이름을 바꾸로 회비를 모아 공식 활동에 나섰다. 지난 6일 ‘세월호 600일 추모제’ 때는 안산에서 처음으로 500여 전체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경건하기만 했던 예전 추모행사와 달리, 객석에서는 “앙코르”까지 터져나왔고 음반을 내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소문이 나면서 성남, 광주, 전주 등등 전국 각 지역 세월호대책협의회에서 공연 초청이 줄을 잇고 있다. 31일 밤에는 세월호광장에서 송구영신문화제 무대의 대미를 장식한다.

“416합창단 활동의 또다른 의미는 참사의 충격과 슬픔과 분노가 낳은 수많은 ‘세월호 추모곡’들을 가족들이 직접 부르며 하나의 문화로 승화해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이제는 416합창단의 지휘 겸 기획을 맡게 된 박씨는 “추모곡들을 처음 연습할 때는 가족들이 슬픔에 겨워 힘들어하지만 ‘잊지 말자’는 뜻을 가장 널리 오래도록 남길 수 있어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약속해’(윤민석 곡) ‘화인’(백자 곡) ‘어느 별이 되었을까’(이현관 곡) 등 추모곡들은 합창단의 대표곡으로 익숙해졌다.

416합창단과 평화의나무합창단은 새해 ‘세월호 2주기 추모제’에는 더 많은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합창 공연을 준비할 참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6년만에 ‘복직 길’ 열렸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1)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가운데),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왼쪽), 홍봉석 쌍용차 노동조합 위원장이 30일 오후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자 단계적 복직 등 3자 합의문 조인식을 마친 뒤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평택/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노·사, 손배소 철회 등 합의
정리해고 등 179명 복직 ‘노력’키로
적자 아직 못벗어 시기는 불확실
사내하청 6명 등 30명 새해 1월 ‘복귀’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복직을 위한 극한 투쟁을 이어온 지 6년여 만에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쌍용차는 30일 이사회를 열어 200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야 했던 해고자, 희망퇴직자, 유관업체 전직자(분사자)들의 단계적 복직을 뼈대로 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노동조합, 쌍용차 3자간 합의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 직후 노·노·사 대표자인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홍봉석 노동조합 위원장,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임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회사는 2017년 상반기까지 정리해고 및 징계해고 노동자 179명을 복직시키는 데 ‘노력’하며, 인력이 필요한 경우 ‘해고자 3, 희망퇴직자(분사자 포함) 3, 신규 채용 4’의 비율로 충원할 예정이다. 우선 내년 1월말까지 40명을 채용하기로 했는데 이에 따라 해고자 12명, 희망퇴직자 12명이 일터로 복귀한다. 신규 채용 16명 중에는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 6명이 포함돼 있다. 쌍용차 사내하청 업체에서 2년 이상 일하다 200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이들을 복직시키기로 한 것이다. 완성차 업체에서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2년 이상 근무했다면 ‘불법파견’으로 원청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사는 노조와 함께 복직 대기자와 구조조정 이후 숨진 노동자 유가족 지원에 쓰일 15억원대 기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복직 대상자가 회사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을 취하할 경우, 회사는 쌍용차지부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가압류를 취하하기로 했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2)

쌍용차 사태 일지

노·노·사가 복직점검위원회를 구성해 복직 관련 사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정확히 언제쯤 모든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티볼리 롱바디’ 출시나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등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 경우 채용을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해고자 복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생산량이 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2017년 출시가 예정된 신차에 대한 마힌드라 그룹의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쌍용차는 소형 스포츠실용차(SUV) 티볼리 판매 호조로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내수 8만8313대, 수출 4만1335대 등 총 12만9648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2% 증가한 수치이지만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택공장에서 이익이 나려면 15만~16만대가량 생산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2000년대 초반 확보한 기술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마힌드라 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해야 스포츠실용차 전문 업체로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이날로 마무리됐으나, 이들이 거리에서 버틴 6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당시 대주주였던 중국 상하이차 그룹의 ‘기술 먹튀’ 논란 이후 2009년 쌍용차는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회사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그해 4월 전체 인력의 37%에 이르는 2646명의 정리해고안을 통보했고, 노조는 이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에 들어갔다. 공권력 투입 등을 통한 폭력적 진압 끝에 77일이 지나서야 옥쇄파업은 마무리됐다. 그 과정에서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고 980명은 정리해고 됐다. 노·사는 정리해고 대상자 다수를 무급휴직·희망퇴직으로 전환했으나, 결국 165명은 정리해고됐다. 쌍용차의 인력 구조조정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으로 숨진 이 회사 노동자와 가족은 28명에 이른다. 살아남은 이들의 몸과 마음도 피폐해졌다는 연구 결과도 이어졌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쌍용차 사태는 대기업 노동자들마저 한순간에 직장 바깥으로 나가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를 보여줬다. 실업 위기에 놓인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기업과 지역사회, 국가가 다층적으로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정 노현웅 기자 saram@hani.co.kr

표창원, 더 이상 비겁해지기 싫어서…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3)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5년 12월27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의 영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21]

문 대표의 입당 제안 받아들인 범죄과학연구소장

“날 이용하라, 뭐든지 하겠다”
“박근혜 정부는 독재이자 경직된 권위주의”

그는 말을 잠깐 멈췄다. 짧은 찰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정치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가족의 반응을 물은 직후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홍역을 치렀고 힘든 일을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시 그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며 선거 직전 경찰대 교수직을 내놓았다. 그 자신의 표현처럼 “철밥통 교수직을 버린” 선택이었다. 이제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아내는 “정치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잘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우리는 괜찮으니 까짓것 해봐, 아빠”란 딸의 반응을 전하면서 그는 잠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야당, 물이 들어온 배와 같아



옛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의 비전을 제시한 당일(2015년 12월27일), 문재인 대표는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의 영입을 발표했다. 문 대표는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인물 혁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외부 인사 1호로 표 소장을 영입했다. 2015년 마지막 날, 표 소장을 그의 집 근처에서 만났다.

“(정치인이 된 뒤) 변하지 말라”는 당부를 많이 듣는다는 그는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을 갖춘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도와달라”는 문 대표의 말에 정치를 하지 않으려던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더 이상 비겁해지기 싫어서 문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정치를 하면 (당장) 잃을 것들이 있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뒤 세운 범죄과학연구소가 본궤도에 올라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고 있었다. 여러 방송 섭외도 받은 상태였다. 소설 출간도 예정돼 있다.

201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학생 참여형 수업)를 통해 ‘추리 교실’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런 상황을 문 대표에게도 말했다. 그런데 문 대표가 야당의 상황을 얘기하며 “절박하다. 도와달라”고 했다.

이걸 거절하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더라. 야당 상황은 이미 물이 들어온 배와 같아 (여기에 합류하면) 나도 함께 침몰할 수도 있고, 욕을 들을 수도 있다. 정치를 하더라도 야권 분열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의 상황도 정리한 뒤에 하면 좋겠지만 그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유불리를 따지면 (문 대표에게) 왠지 ‘갑질’을 하는 것 같았다.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들로부터 출마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 두 대표도 절박한 상황에서 제안했을 텐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절박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그땐 세월호 참사 이후라 야권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보궐 출마지도 야권 우세 지역이 많아 (내가 출마하더라도) 뭔가 혜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땐 방송에 출연하면서 글을 쓰고, 기업·정부기관·학교 강연 등을 통해 (야권의) 외연을 확대하고 합리적 사회로 변화시키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당에 들어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입당하면서 야당 상황을 ‘최악’이라고 표현했는데.

새가 날기 위해선 좌우의 날개가 필요하듯 정치도 경쟁 관계가 있어야 (집권 여당이) 독재로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야권이 무너지고 있다. 국민들은 정신 붕괴 상태다. 내가 이 당을 살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부터 이 당에 들어가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기존 계파와 지역 구도·편 가르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합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분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다.

야구에서 구원투수의 투구 수는 제한돼 있다. (내가 입당해서) 6회와 7회를 가까스로 잘 막았다 해도 8회부터 (상대 역공을 받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른 분이 더 합류해 이 동력을 이어가야 당이 살아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문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뒤 문 대표와 가까운 사람으로 분류될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친노(무현)’와 ‘친문(재인)’이라고 하면 뭔가 음습하고 문제가 있는 듯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그건 언론·방송·여권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프레임이다. 상대가 씌운 덫에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 움츠러들고 자꾸 ‘난 (친문이) 아니다’는 식으로 대응하면 (상대가 그렇게 공격하는 걸) 더 재미있어한다. ‘그래 친문이다, 어쩔 건데?’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문 대표의 장점은 살리면 되고, 지적받는 부분은 (문 대표가) 수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면 된다.

지역구 출마와 비례대표 중 어떤 것에 더 관심이 있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의원이 되지 않더라도 당에서 보직을 맡아 (당내 갈등을) 봉합하고 당원을 다독이고, 당의 외연을 확대하고, 야권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문 대표에게도) 그런 말을 했다. ‘우리 당이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날 최대한 이용하시라. 난 뭐든지 하겠다’고.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하는 이유 10가지(정의 실현, 안전 확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꿈과 행복을 주는 일 등)를 밝힌 바 있다. 차기 총선에서 원내로 들어오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

정권 교체다. 이것이 실현되면 내가 말한 10가지도 실현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공정한 환경에서 자라고, 무너진 사법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며 경찰대 교수직을 그만뒀다. 국정원·경찰 개혁에도 관심이 있을 텐데.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 것이다. 이 문제는 오래갈 싸움이다. (대선 개입에 대한) 일종의 혐의들을 모으고, 정권이 교체되면 그 단서에 기반한 증거를 토대로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이다. 국정원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다. 민주적 통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국정원은 해외 정보 분야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국정원·경찰·군 등에 흩어져 있는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한 기관에 흡수시킨 뒤 이 기관이 정치 도구화되지 않고 국가안보에 집중하는 기관이 되도록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경찰도 권력의 시녀가 되어가고 있다. 어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다. 역시 경찰 지휘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경찰 내부의 강고한 카르텔(동맹)을 깨는 혁신은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다. 내가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은, ‘경찰을 뜯어고치는 데 성공할지, 내가 뜯겨서 나갈지’에 대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을 가진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는데.

막말, 비합리, 몰상식, 편가르기,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 등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든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논쟁하고 설득하면서 어떤 것이 옳은지 제시해야 한다. 결정은 주권자(국민)에게 맡기는 것이다. 상식과 합리, 논리와 분석, 치밀한 준비와 노력의 결과물이 ‘신사의 품격’이다.

하지만 나 혼자 매너가 있으면 무슨 소용 있나. 위선과 위장, 술수, 거짓 선동을 위한 카르텔을 깨뜨려 (그 실체를) 주권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깨뜨리는 용맹함이 필요하다.

정치인에겐 균형감도 중요하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 (반드시 해야 하는) 당위와 현실 사이의 균형 등이 필요하다. 너무 깨끗한 척하면 상대를 악으로 보게 된다. 그렇다고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

만약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그런 균형감이 있었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협정 결과에 대해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이란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4)

표창원 소장이 2015년 12월30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합의 반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박근혜 정부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핵심은 독재다. 이 표현이 싫다면 경직된 권위주의라고 바꿔줄 수도 있다. 과거처럼 고문으로 사람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소통과 정치를 하는 방식에서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여당은 최고 존엄으로 여기는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말을 못하고 있다. 위에 있는 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그분의 지시를 받지 않으면 과감한 행동을 못하는 것 때문에 세월호 참사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도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밑에 있는 사람이 이걸 깨줘야 한다. 조선시대에 임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건 아닙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라고 했던 선비들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이 임금 앞에서 그렇게 했었는데 지금은 (여권에선) 그만큼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을 탈당한 안 의원의 최근 행보, 문 대표 사퇴를 요구해온 이른바 ‘당의 비주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완곡한 표현으로 기사에 실리길 원했다. 결국 야권 통합이란 이름으로 만날 사이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다듬어달라고 했다.

“(안 의원이 탈당하고, 문 대표에 대한 비주류 쪽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현재 들어간 당의 대표가 문재인 대표이니 (나는) 그와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갈 것이다. (안 의원, 천정배 의원 등도) 잘되었으면 한다. 결과적으로 우린 통합해야 하는 파트너이니 서로에 대한 비난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는 “안 의원과 천정배 의원 등이 나를 문재인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의 언행을 통해 ‘저 사람(표창원)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주고, 혹시라도 (야권통합을) 중재할 여건과 영향력이 나에게 생긴다면 그 역할(중재)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민의 뜻과 함께하면 폭발적 힘”

그는 2015년 마지막으로 열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참석했는데, 이날의 경험이 정치인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날 한-일 협정 결과와 소녀상 이전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7시간 이상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했다.

“한-일 협정 결과는 참담하다. 분노도 느낀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 정부 관계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야당도 일부 의원만 있다 갔다. 정치는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 국회에서 법과 제도를 논하는 것인데, (시민이 있는) 현장에 정치인이 없다. 물론 나도 모든 곳에 다닐 수는 없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많이 갈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내가 대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 이 이야기에 시민의 뜻이 함께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용인=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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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지막길 배웅받을 권리 있기에…‘상주’ 돼줍니다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5)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포은로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작업중인 영정사진을 모아놓은 펼 침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국장이 들고 있는 꽃은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을 때 쓰는 소품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외계층 ‘존엄한 죽음’ 돕기

“죽으면 소용없다고요? 죽더라도 ‘며칠 있다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떠오를 겁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의 희망을 계획하는 세밑, 분주한 거리 한켠엔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받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연고가 없거나 가족과 친지도 포기한 이들의 ‘상주’가 되길 자처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나눔과나눔’의 박진옥(43) 사무국장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게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이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월세 압박 등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대만인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했다. ‘산 사람들 복지도 어려운데 장례까지 세금으로 치러줘야 하느냐’는 시각에 대해 박 국장은 “장례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죽든, 심지어 내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책임지고 장례를 치러준다는 믿음이 있으면 죽음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떨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눔과나눔은 2011년 1월 박 국장이 지인 2명과 함께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지켜보다가 ‘할머니들 가시는 길은 누가 지켜드리나’ 하는 생각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간 일이 계기가 되면서 출범했다. 같은 달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선이 할머니의 장례가 나눔과나눔의

‘1호 장례식’이 됐다. 2013년부터 상근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장례 지원 범위를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까지 확대해가고 있다.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
“홀로 죽더라도 사회가 책임지고
장례를 치러준다는 믿음 있으면

막연한 공포 떨칠 수 있겠죠”

위안부 할머니를 시작으로
무연고자·기초수급자 장례 치러줘
‘노숙인 장례치를 권리’ 공론화도

“장제급여 75만원은 턱없이 부족
공공장례식장 대안 될 수 있을것”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박 국장은 1997년 고려생명에 입사했다. 구제금융(IMF) 여파로 입사 1년 만에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그의 인생도 바뀌었다. 대학 때부터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들어갔고, 그 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국제앰네스티 등을 거쳤다. 틈틈이 전공을 살려 미국 회계사 자격증(AICPA)을 딴 게 사업 기획은 물론 단체의 살림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됐다.



그동안 ‘터 닦기’ 업무에 집중해왔다는 박 국장은 “올해부터 ‘빈틈을 메운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대표적인 게 ‘마음꽃 영정사진’ 작업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담은 증명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쓴다. 그는 ‘빈소를 찾는 주변 사람들이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밝은 모습을 본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종로구와 협약을 맺어 어르신들의 밝은 영정사진을 찍었다. 박 국장은 “처음엔 사진 찍기 싫다며 손사래치던 할머니도 있었는데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색조화장을 받자 나중엔 찍겠다고 마음을 바꾼 분도 있었다”며 웃었다.



노숙인의 존엄한 장례를 치를 권리에 대해 공론화한 것도 그가 인상깊게 여기는 올해의 사업이다. 15년째 열리고 있는 ‘홈리스 추모주간’을 공동기획하면서 박 국장은 주거·취업 등 노숙인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요구해왔다. 박 국장은 “거리에서 사망한 노숙인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동자동 쪽방 주민 등 그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있다는 게 우연히 알려져 장례를 치른 적이 있다. 지금은 법적 연고자가 없으면 생전의 동료들은 이들의 죽음조차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기초생활보장 장제급여(75만원)는 일반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공공 장례식장을 도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에도 그는 ‘죽음’을 화두로 다양한 시도에 나서려 한다. 병원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맞춤 제공하는 ‘자본화된 장례’ 대신 고인이 머물렀던 집 등에서 이웃이 모여 추억을 기리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죽음 이전에 자신의 장례를 치러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볼 수 있는 ‘사전 장례’ 아이디어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고령화, 1인가구 증가 등으로 ‘죽음·장례의 사회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박 국장은 “죽음을 개인과 가족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설날, '새누리 삼촌'-'일베 조카' 만났을 때 대응법

원샷법? 진박 논란? 정치 불신?…이것만 숙지하세요!

국민 2명 중 1명은 이번 설연휴 가족 모임에서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눌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9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냈는데요,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관련한 대화가 오간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눌 것 같다'는 응답이 52.1%를 기록했습니다.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누지 않을 것 같다(44.3%)'는 응답보다 7.8%포인트가 높습니다.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응답은 3.6%로 나타났습니다. (2월 2일, 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50%)와 유선전화(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은 4.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별다른 선거가 없었던 작년 추석의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확실히 '정치 시즌'인 것 같습니다. 지난 2015년 9월 같은 기관의 '추석명절 정치담화 참여 여부' 여론조사에서는 '참여했다'는 응답이 45.0%, '참여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55.0%였습니다.

미국의 민주당은 명절을 앞두고 '공화당 삼촌을 만나면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식의 가이드라인을 배포한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지난해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민주당은 당원들에게 "이런 자리에는 꼭 공화당 삼촌 한 명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당신은 그 삼촌 앞에서 민주당 대변인 역할을 똑바로 해야 한다"며 '모범 답안'을 뿌렸다고 하죠.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공화당 삼촌: 민주당이 집권하면 경제가 망가져!

민주당 당원 : 삼촌! 지금 미국 경제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아세요? 실업률이 현재 5%에요. 최근 7년간 가장 낮은 수치에요.

정치 대화와 세대 차이가 연관이 있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어보입니다. 그리하여, 정리해봤습니다. <프레시안> 논조를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입니다. 이번 설 명절 때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친인척을 만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이 기사를 읽으시는 당신이 보수 정당 지지자라면 답변의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 응용하시면 됩니다. 편집자.

진박 논란부터 누리과정까지 당신의 답변은?

[원샷법] 그나저나 원샷법 통과돼 참 잘됐네. 국회가 발목 잡으니 경제 살리는 법안 처리도 못 하고. 저러니 대통령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게요. 원샷법 통과시켜 '원샷'으로 경제가 살아나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 원샷법은 서민들에겐 별로 상관 없는 법이죠. 쉽게 말해 기업이 인수합병을 수월하도록 길을 터주는 거예요. 기업에 대한 '수술'을 주주들이 아니라 총수들이 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잘려도 할 말이 없대요.그런데 의사가 자기 몸을 스스로 수술할 수 있어요?재벌 3세, 4세의 경영권 승계가 더 쉬워질 수는 있겠죠. 우린 재벌이 아닌데.사촌 OOO가 대기업 다니죠? 그 회사가 구조조정이 유력하다고 하는데, 무슨 일 생기진 않겠죠?

[서비스법] 아니 그래도 서비스법인가? 그거 하면 일자리가 수십만 개가 생긴다는데 그건 왜 안 해줘?

저희 어머니 지난 번에 병원 가셔서 허리 수술할 때 병원에서 이것저것 끼워판다고 돈 수백만 원 들었잖아요. 서비스법이 서비스 규제 풀어주는 법인데요. 그러면 병원이 이런 저런 상품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겠죠. 그걸 누가 사죠? 의료 지식이 없는 서민들이 사는 거에요. 규제 중에서도 나쁜 규제는 풀어야 하는데, 환자들을 보호해주는 규제는 환자한테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병원들은 돈 더 벌겠죠. 환자들이 돈을 더 내니까. 의료 영리화가 다른 게 아니에요. 그리고 보건의료 쪽에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차라리 병원에 간호인력 확충을 명시하는 법이나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는 게 더 좋죠. 그런데 그것은 정부에서 돈 든다고 하기 싫대요.

[노동 시장 개편] 우리 회사도 보면 정년 다 되어가지고 하는 일도 없이 월급, 그것도 제일 많은 월급 꼬박꼬박 다 받아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야, 그런 양반들 때문에 너 같은 팔팔한 청춘들이 먹고 살 일자리가 안 생기는 거야. 임금 피크제도 하고, 해고도 좀 하고 그래야지, 그리고 그런 거, 호봉제가 언제적 얘기야, 어휴. 성과 없는 놈들은 조금 주고 그래야 너희들 일자리가 생기는 거야. 파견법은 또 귀족 노조들이 막는다며? 나라가 진짜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게 다 너네 미래 걱정해서 하는 소리야.

그런데 삼촌…. 참 신기한 게 일 안하고 월급 받는 사람 많다고 다들 그러는데, 또 맨날 뉴스에 나오는 거 보면 우리나라가 장시간 노동 최고라고 하데요. OECD 안에서도 작년 말에 멕시코를 제치고 1등이에요. 내가 보기엔 일자리가 없는 건 세 사람이 할 일 두 사람한테 시키면서 기업들이 신규 채용 안 해서 그런 거 같은데? 법대로 8시간만 일 시킨다고 생각해봐. 삼촌도 일찍 퇴근하고 좋고 신규채용도 해야 하니 일자리도 늘고 얼마나 좋아. 아 그리고 저성과자가 별 거야? 삼촌도 못된 부장 만나 찍히거나 인사과에 찍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저성과자 돼 있을걸? 일자리도 필요하지만 그 일자리가 그래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자리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요. 주변에 보면 사람 구하는 곳도 꽤 많아. 일자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정규직이고 월급 200만 원 이상 주는 데가 없어요. 이런 와중에 파견 확대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니. 글고 내 걱정은 진짜 고마운데 삼촌 걱정부터 하세요. 삼촌 임금피크제로 월급 절반 날아갈 때 OOO(삼촌 둘째 딸) 대학 가잖아요.

[복지와 세금] 당연하지. 복지가 퍼주기가 되면 되나. 그것도 나라 곳간을 생각해야지. 다 세금 드는 거 아니야?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철이 없어서 문제야.

공짜가 아니에요. 내 돈 내고 내가 받는 거예요. 그게 왜 공짜예요? 그런데요, 세금을 올려도 누진세를 하면 우리는 무조건 이득이에요. 부자는 더 내고, 중산층은 덜 내면 서민들은 내는 돈보다 받는 혜택이 더 많아지잖아요. 큰어머니 기초연금 20만 원 받는 것도 그래요. 제가 지금 세금 몇 만 원 더 냈는데, 큰어머니는 제가 낸 것보다 기초연금 더 받으시잖아요. 우리가 가난할 때 국가한테 혜택 지원받고 이렇게 돈 잘벌게 된 대기업 총수, 재벌 같은 분들도 이제는 조금 더 양보해서 애국하라고 해야죠. 저같은 서민도 세금 내는데

[야권연대] 더불어민주당이고 안철수 신당이고, 야당은 맨날 싸움이야. 왜 또 자기들끼리 싸우고 그래? 저러다가 또 선거 때 되면 야권 연대 한다고 하려고….

새누리당이 힘이 세니까, 새누리당 싫어하는 약한 사람들끼리 힘 모으는 게 야권 연대인데 그게 뭐 이상해요? 정치 선진국이라는 유럽에서도 늘상 하는게 연정 아닙니까. 연정이 연대예요.

[선거제도 등 정치개혁] 야, 비례대표가 뭐 필요하나. 그거 돈 받고 금배지 다는 전국구 의원 아냐? 낙후된 농어촌 지역 의석을 확 늘려야지, 그게 약자를 대변하는 거 아냐?

삼촌. 제가 직업이 뭐죠? ("너 은행 다닌다며?") 그럼 제가 무슨 지역구 사는지 아세요? ("너 마포 산다며?") 그러니까 마포 갑이게요, 마포 을이게요? ("……") 제가 맨날 아침에 출근해서 야근하고 퇴근하면 빨라야 9시인데, 어차피 집도 제 집 아니고 전세인데 그러면 금융노조 대표가 국회 가는 게 저한테 낫겠어요, 우리 동네 통장 출신이 가는 게 낫겠어요? 여기 시골도 마찬가지에요. 개발 돼서 땅값 오르면 땅 주인들한테나 좋지, 우리 집안에 이득 될 게 뭐 하나라도 있어요? (각자 직업에 따라서 응용해 봅시다.)

[북핵] 김대중이 돈 퍼줘서 북한이 핵 개발하고 미사일 개발 하는거 아냐!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쏘고 핵실험 한다는데, 우리도 핵무기 만들어야 안 되겠나! 그래서 핵개발 추진한 박정희가 위대한 지도자인 거야!

(네! 드디어 최종 보스가 나왔습니다. 두둥.) 아이고, 옆집 깡패 때문에 못 살겠으니 저도 어디 가서 술잔 받고 몸에 용 그림 좀 그리고 올까요? 김대중이 대통령 된 게 1997년이니 내년이면 무려 20년 됩니다.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뭐했는데요 그러면? 그리고 북한 핵개발은 2005년 9.19 공동성명 발표 후 2007년 7월부터 2008년 9월까지 1년여 동안은 완전히 멈췄었었어요. 2008년 6월에 북한이 영변 핵시설 자폭시킨 거 아세요? 김대중 노무현이 10년 동안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1년 동안 멈춰 놨더니, 부시랑 이명박이 북한 뺨 때려서 다시 시작하게 한 셈이에요 오히려.

[누리과정] 대통령은 돈 다 보내줬다고 뉴스에 나오잖아. 도대체 그런데 왜 돈이 없다는 거야? 박근혜 공약이라고 그냥 안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냐?

3살부터 5살까지 보육, 말 그대로 애를 키우는 거잖아요. 학교 다니는 거하고 다르죠. 아이를 키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대통령이 말했는데, 교육청 예산을 빼서 쓰라고 하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은 어떻게 돼요. 대통령이 준 돈이 바로 그 교육청 예산이에요. 선진국들의 공통점이 '학교 갈 때까지 부모가 아이를 편하게 키우도록 국가가 도와준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국가에서 아이들 교육은 책임 져야죠. 그런데 대통령이 학교 시설, 교육 환경 개선비로 돈을 보내준 것을 가지고, 서너살 아이들 육아를 책임지라고 하면 안되지 않아요? 메뉴는 대통령이 정하고, 돈은 교육청이 내라고요?

[정치 불신] 대통령은 잘 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문제야! 세금도둑들 같으니라고. 정치인들을 심판해야지. 그렇지 않아?

김영삼도 정치인이죠? 이명박은요? 박근혜는요? 대통령이 바로 정치인이에요. 정치가 문제라면 같이 반성하고 고민해야죠. 국회의원이 뭐예요? 연봉 1억 원 받고 100억 원의 세금 누수를 막는 사람이에요. 이를테면 우리 회사의 회계 담당 직원 같은 사람인데, 회계 직원이 절세하면 포상 주죠? 못 하는 사람은 갈아 치우면 되는 거예요. 세금 낭비라고 보면 안되요.

[진박 논란] 진박이 어때서?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덕에 자리 보전하고 있는데, 대통령 일 못하게 사사건건 태클이나 놓고 말이야. 대통령 좀 제대로 도와주는 의원을 뽑아야지.

삼촌, 종편 좀 그만 보세요. 거기에 나오던 사람들, 지금 다 정당 가서 공천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정치인들이 잘못했다면서, 왜 예비 정치인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을 듣고 있어요? 다 정치꾼들이에요. 아니 진박 정치인을 뽑으면, 대통령 임기 끝나면 그 사람들 다 배지 놓고 물러나야겠네요?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면서요? 대통령이 임기가 끝났는데, 그러면 자기들 임기도 끝내야죠. 앞뒤가 안 맞잖아요. 국회의원은 제발 4년 보고 뽑읍시다, 삼촌. 안그러면 또 정치인 욕하고,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빨갱이?] 더불어민주당이고 정의당이고 다 빨갱이 아냐? 전교조 때문에 아이들이 좌경화되고 삐딱해졌어. 이게 다 노무현 김대중이 대통령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 아냐?

굳이 이런 수준의 질문에까지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누지 않을 것 같다'고 답한 44.3%의 독자가 아니더라도, '빨갱이' 정도 단어가 나오면 그냥 이렇게 답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고, 삼촌, 할아버지 음복 술이 과하셨네요. 얼굴 빨개지셨다. 하하하하. TV에 뭐 재밌는 것 하나 한번 틀어 볼까예?"

프레시안 박세열

 서울 돈의동 쪽방촌 ‘이웃사촌 장례식’

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16)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사랑의 쉼터’ 건물 지하에서 사랑의 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한겨레두레)이 마련한 ‘마을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매달 한번 ‘무연고 주민’ 합동장례
사랑의쉼터·한겨레두레 함께 마련
“쓸쓸한 죽음 맞지 않을것같아 다행”

제단 위엔 영정사진 없이 위패 3개만 나란히 놓였다. 맨 처음 절을 올린 조문객은 고인들을 “잘 모른다”고 했다.

23일 오전 종로구 ‘돈의동 사랑의 쉼터’ 건물 지하 6평(19.83㎡) 남짓한 공간에서 ‘마을 장례식’이 열렸다. 돈의동 사랑의 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한겨레두레)이 지난달 21일에 이어 두번째 연 장례식이다. 이날 위패에 이름을 올린 고아무개(50대 추정)씨, 김아무개(56)씨, 정아무개(28)씨는 모두 돈의동 쪽방촌 주민이었다.

고씨가 이곳 쪽방촌에서 산 건 ‘단 3일’이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쪽방촌에 들어온 고씨는 이웃들과 통성명도 하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쪽방촌 장례를 지원하는 사랑의 쉼터와 한겨레두레 쪽은 고씨도 장례를 치러야 하나 고민했다. 우은주 한겨레두레 사무국장은 “오래 살면 주민으로 인정하고, 3일 살았다고 주민이 아니라고 하는 건 결국 또 이들을 구분짓는 것이라 생각해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인 정씨는 쪽방에 온 지 두달 만에 세상을 떴다. 정씨도 들어올 때부터 아파서 주민들과 왕래가 없었다. 마을 장례가 없었다면 이들은 행정기관이 곧장 화장해 ‘사체 처리’를 했을 터다. 김경환 한겨레두레 상임이사는 “현재 종로구와 서대문구 차원에서 마을 장례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개별 단체나 지자체를 넘어 국가사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연고나 가족이 없는 쪽방촌 주민에게 ‘죽어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건 작은 위안이 된다. 이화순 사랑의 쉼터 소장과 함께 이날 장례식의 공동 상주를 맡은 주민 박동기(61)씨는 “원래 쪽방촌에서 가족 없이 죽은 사람들은 구청에서 곧장 내보낸다. 영정사진을 (봉사로) 찍어주는 작가도 있어서 주민들 10명 넘게 찍기도 했다. 나도 도와야 이렇게 갈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첫 조문을 한 주민 박병무(72)씨는 “(고인들을) 잘 알진 못한다. 동네사람이니까 왔다. 우리 동네는 원래 그렇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매달 마지막주 ‘마을 장례식’을 치를 계획이다. 2014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무연고 사망자는 1008명으로,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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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경제 성장과 발전이 과연 국민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모든 정책 목표를 국민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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